최근 일본 전역을 강타한 '쌀 대란'의 여파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밥 한 공기의 값이 두 배로 뛰었다면, 그 나라 사람들의 혼란은 말할 것도 없겠죠. 실제로 일본에서는 최근 쌀값이 예년의 두 배 이상으로 치솟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사태가 장기화되자 일본 정부는 급기야 비축미를 시중에 풀기 시작했고, 그 현장에서는 아침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레이와 시대의 쌀 파동’으로 불리는 이번 현상은 단순한 일시적 혼란이 아닙니다. 수십 년간 쌓인 구조적 문제가 기후변화라는 방아쇠를 만나 터진 결과입니다.
과연 일본의 쌀값 폭등은 어떤 원인으로 시작되었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 '레이와 쌀 파동'의 핵심 원인과 복합적인 배경, 그리고 한국에 미치는 영향까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폭염에 무너진 ‘밥심의 나라’: 고시히카리 품종의 치명적 약점 노출
일본 쌀값 폭등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고시히카리' 품종의 붕괴입니다. 일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쌀 품종인 고시히카리는 뛰어난 맛과 품질로 전국적인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일본 쌀 생산량의 약 35%를 차지하는 대표 품종이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시히카리는 고온에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일본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은 고시히카리 품종의 생육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고, 결국 수확량 급감이라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한 품종의 타격이 전국적인 공급 부족으로 이어진 것은, 단일 품종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는 단순히 날씨 문제가 아닌, 품종 다양성 부족이라는 농업 구조적 취약점이 기후변화와 맞물려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감반 정책'의 역설: 비상시에 발목 잡힌 생산 기반
고시히카리 붕괴 외에도 일본 쌀값 폭등에는 더 깊은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정부가 수십 년간 시행해온 '감반 정책'이 그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감반 정책은 쌀 과잉 생산으로 인한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농가에 쌀 재배 면적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평상시에는 공급 과잉을 막고 쌀값을 안정화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 앞에서는 생산 기반을 약화시키는 독이 되었습니다. 마치 비상시를 대비해 저축해야 할 때 오히려 돈을 쓰라고 권한 격이 돼버린 것입니다. 장기적인 식량 안보 관점에서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것보다 단기적인 가격 안정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역설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줄어든 재배 면적은 폭염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와 맞물려 쌀 공급 부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3. 복합적인 악재의 겹겹: 외식 수요 증가, 엔저, 고령화
여기에 끝이 아닙니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까지 겹쳐지며 일본 쌀값 폭등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 코로나19 이후 외식업 회복 및 쌀 수요 증가: 팬데믹 기간 동안 주춤했던 외식업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쌀 소비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수요가 늘어나 가격 상승 압력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 엔저 현상으로 인한 농업 생산비 급등: 일본 화폐인 엔화의 가치가 다른 나라 통화 대비 크게 떨어지면서, 비료, 농약, 연료 등 수입 농자재의 가격이 크게 올랐습니다. 이는 농가의 생산 비용 부담을 가중시켜 쌀 생산 의욕을 저하시키고, 최종 쌀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 농촌 고령화 및 후계자 부족: 일본 농촌의 심각한 고령화와 젊은 후계자 부족 문제는 쌀 생산 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을 인력이 줄어들면서 쌀 생산량이 감소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은 마치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본의 쌀값 폭등을 부채질했습니다.
4. '레이와 쌀 파동'의 결과와 한국산 쌀의 기회
이 모든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쌀값은 예년의 두 배 이상 치솟았고, 정부가 비축미를 시장에 풀어도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쌀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레이와 시대의 쌀 파동'이라 불리는 이 사태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으며, 식량 안보에 대한 심각한 경고음을 울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한국산 쌀이 35년 만에 일본 시장에 정식 진출한 것입니다. 지난 4월에만 수출된 2톤의 한국산 쌀이 10일 만에 완판되며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폭등한 일본산 쌀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갖췄고,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에게도 품질을 인정받으며 일부 일본인들은 한국 여행 중 쌀을 직접 사올 정도입니다.
다만 현재 수출 물량은 일본 전체 쌀 소비량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일본 정부도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높은 관세 장벽을 유지하고 있어 한국산 쌀의 대규모 확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5. 한국 식량 안보의 반면교사: 지금 당장 대비해야 할 때
식량 자급률이 일본보다도 낮은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옆 나라 풍경이 마냥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일본의 사례는 기후변화, 단일 품종 의존, 잘못된 농업 정책, 환율 변동, 인구 구조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식량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한국산 쌀 수출 기회를 넘어, 우리는 이제 식량 안보에 대한 근본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쌀을 포함한 주요 곡물 자급률을 높이고, 기후변화에 강한 품종 개발 및 보급, 안정적인 비축량 확보, 스마트 농업 기술 도입, 그리고 농촌 인력 문제 해결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시급합니다.
일본의 '레이와 쌀 파동'을 통해 우리는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고, 미래를 위한 현명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